
말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한마디의 말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잘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말하는 힘은 나의 생각을 세상에 꺼내놓는 힘이다. 내 뜻을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힘이다. 침묵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은 때로 비겁함이 되고, 부당한 일을 보고도 입을 다무는 침묵은 또 하나의 가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지나치면 칼이 된다.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잘라버리고, 상대가 끝나기도 전에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된다. 요즘 사람들은 말할 기회는 넘쳐나는데 들을 기회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SNS에서는 모두가 말하고, 댓글에서는 모두가 판단하며, 누구도 상대의 마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상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들어주며 말하지 못한 침묵까지 읽어주는 것이 진짜 듣기다. 그래서 듣는 힘은 말하는 힘보다 훨씬 어렵다.
인간관계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말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듣지 않아서 생긴다. 부부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멀어지고, 친구가 등을 돌리는 이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말을 왜 몰라주느냐”는 서운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더 깊이 상처받는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모욕이 되기도 한다. “힘내”라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청이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좋은 말은 말을 잘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잘 듣는 마음에서 나온다.
말해야 할 때는 당당하게 말하고, 멈춰야 할 때는 과감하게 입을 닫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방향을 움직인다. 결국 사람을 얻는 것은 말재주가 아니라 경청이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말 한마디지만 관계를 살리는 것 역시 진심으로 내어준 귀 한 쌍이다. 말은 입에서 시작되지만, 사람의 마음에 닿는 길은 반드시 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자연도 말보다 듣기를 먼저 가르친다. 나무는 말없이 계절을 듣고, 강은 흐르면서 부딪치는 돌의 소리를 들으며, 꽃은 벌과 바람의 움직임을 듣는다. 인간만 너무 많은 말을 하느라 세상의 소리를 놓친다. 새벽의 새소리, 내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한숨소리, 늙어가는 부모의 느린 목소리 등 우리가 듣지 못하는 사이 삶은 수많은 이야기를 조용히 흘려보낸다. 인생을 살아보면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순간도 있지만,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것을 후회하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훗날 가장 그리운 것은 내가 했던 말보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입을 열면 사람만 모이고 귀를 열면 세상이 보인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